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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년 대장정의 끝! 모험의 교과서 ‘인디아나 존스: 운명의 다이얼’ [IS리뷰]

영화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가 42년의 대장정을 마치고 막을 내린다. 이 시리즈는 많은 이들에게 모험가 혹은 고고학자의 꿈을 꾸게 했던 불후의 명작이다. 특히 지난달 28일 개봉한 ‘인디아나 존스: 운명의 다이얼’은 올해 80세가 된 해리슨 포드가 인디아나 존스를 연기하는 마지막 작품으로 남다른 의미를 가진다.영화는 1944년 2차 세계대전 말미, 나치 요새에 잠입한 인디아나 존스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인디아나 존스가 찾는 건 ‘롱기누스의 창’. 예수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고 알려진 유물이다. ‘롱기누스의 창’을 찾기 위해 기차에 숨어든 그는 우연히 고대 그리스 수학자 아르키메데스가 만든 유물 ‘안티키테라’의 반쪽을 손에 넣는다. 이 과정에서 화려한 액션과 아름다운 풍광이 펼쳐지는데 눈을 뗄 수 없는 몰입감을 선사한다. 특히 디에이징 기술로 만들어 낸 젊은 시절의 인디아나 존스를 만나 볼 수 있어 반가움이 배가된다. 시간은 흐르고 흘러 배경은 1969년으로 바뀐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인디아나 존스는 나이가 들어 정년퇴임을 맞는다. 과거 전설적인 고고학자로 불렸지만, 흘러버린 시간은 냉정하고 잔혹하기만 하다. 그러다 친구 바질 쇼(토비 존스) 박사의 딸이자 대녀인 헬레나 쇼(피비 월러 브리지)가 눈앞에 나타난다. 헬레나는 아버지가 평생을 연구한 유물 ‘안티키테라’의 나머지 반쪽이 있는 곳을 알아냈다며 인디아나 존스에게 도움을 요청한다.하지만 유물을 노리는 이들이 또 있었으니, 바로 나치 출신의 물리학자 위르겐 플러(매즈 미켈슨)다. 위르겐 플러에게 ‘안티키테라’의 반쪽을 빼앗긴 인디아나 존스는 이를 되찾기 위해 마지막 모험에 뛰어든다.‘인디아나 존스: 운명의 다이얼’은 ‘인니아나 존스’ 시리즈의 특성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수많은 벌레 떼에 둘러싸이는 장면부터 유물을 빼앗기고 되찾는 과정, 정통 액션과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라면 빠질 수 없는 동굴까지. 이번 시리즈에서도 고전 영화의 맛을 마음껏 느낄 수 있다. 제작비만 약 2억 9470만 달러(약 3887억원)가 투입됐다. 모로코, 이탈리아, 스코틀랜드, 영국 등 전 세계를 무대로 펼쳐지는 역대급 로케이션의 진수를 맛볼 수 있다. 외에도 상공에서 펼쳐지는 항공 액션, 바닷속 난파선을 찾아 헤매는 수중 액션까지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한다.주인공 인디아나 존스에게는 세월의 흔적이 묻어난다. 예전과 달리 몸은 무거워졌지만 말을 타고, 하늘을 날고, 벽을 타고 오르는 등 몸을 사리지 않는다. 인디아나 존스는 이번 작품에서도 자신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중절모를 쓰고 채찍을 휘두르는데 과거를 추억하는 즐거움을 들게 한다. 영화 말미에는 눈물과 웃음, 그리움까지 자극하는 장면들이 펼쳐진다. ‘레이더스’(1982)부터 ‘인디아나 존스와 미궁의 사원’(1984), ‘인디아나 존스와 최후의 성전’(1989), ‘인디아나 존스: 크리스탈 해골의 왕국’(2008)까지 전작들이 스치듯 지나간다. 평생을 고고학자로 살아온 인디아나 존스의 꿈과 사랑, 가족의 의미에 대해서도 짚으며 소중함을 되새기게 한다.이 작품은 인디아나 존스의 마지막 모험을 담았지만, 흘러간 세월에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평생을 유물 연구에 바쳐온 인디아나 존스의 꿈과 열정이 그렇다. 42년간 인디아나 존스를 연기한 해리스 포드의 마지막 여정이라는 것만으로도 볼 이유는 충분하다.12세 이상 관람가. 154분.박로사 기자 terarosa@edaily.co.kr 2023.07.02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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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우의 스포츠 랩소디] 잉글랜드 상대로 반란 꿈꾸는 웨일스

유럽에서 가장 큰 섬인 브리튼(Britain)에 영국이 있다. 브리튼 섬의 첫 주인은 기원전 5세기경 유럽에서 건너온 켈트족이다. 로마 제국의 카이사르는 기원전 55년에 브리튼 섬을 처음 침공했고, 이후에도 여러 번 공격을 감행한다. 마침내 로마는 서기 43년 브리튼 섬 남쪽을 점령했다. 이후 로마는 400여년 동안 브리튼 섬을 지배한다. 켈트족은 로마의 지배를 받으며 로마 문화에 동화된다. 하지만 쇠퇴하던 로마 제국은 395년 동서로 분열됐고, 410년 로마군은 브리튼 섬에서 철수했다. 로마군이 떠나자 섬의 북쪽, 지금의 스코틀랜드 지역에 살던 픽트족이 남쪽을 노린다. 이에 켈트족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유럽 대륙에서 용병을 데려온다. 이들 용병이 게르만의 일파인 앵글로 색슨족이다. 이들은 자기들 고향과 비교해 너무나 비옥하고 따뜻한 브리튼 섬에 매료된다. 이에 앵글로 색슨은 켈트족을 배신하고 이들을 공격한다. 결국 섬의 남쪽을 차지한 앵글로 색슨족은 일곱개의 왕국을 세웠다. 앵글로 색슨족의 공격을 받은 켈트족은 섬의 남서쪽인 현재의 웨일스 지역으로 피신한다. 웨일스(Wales)라는 단어는 고대 영어로 “외국인의 땅(land of foreigners)”을 의미한다. 켈트족은 귀네드 왕국과 여러 소국을 세워 명맥을 유지했다. 13세기 귀네드 왕국의 흘러웰린 왕은 웨일스 지역을 하나로 통합하며 자신을 웨일스 공(Prince of Wales)으로 칭했고, 당시 잉글랜드 군주였던 헨리 3세는 이를 승인했다. 헨리 3세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잉글랜드의 에드워드 1세는 브리튼 섬의 통일을 위해 봉신 관계에 있던 웨일스를 공격한다. 웨일스 공국은 처절하게 저항했지만 결국 패배했다. 1301년 에드워드 1세는 자신의 아들인 왕세자에게 웨일스 공 작위를 수여했고, 이로써 웨일스는 잉글랜드에 종속된다. 이 전통은 지금까지 이어져 영국 왕 계승 예정자인 왕세자는 웨일스 공을 겸한다. 현재 웨일스 공은 찰스 3세의 장남 윌리엄 왕자다. 영국 국기인 ‘유니온 잭(Union Jack)’은 국내에도 널리 알려져 있다. 이 국기는 성(聖) 조지(잉글랜드), 성 앤드루(스코틀랜드)와 성 패트릭(아일랜드)을 상징하는 십자가들의 조합으로 만들어져 있다. 이에 웨일스의 상징은 유니온 잭에 왜 반영되지 않았는지 궁금해하는 이들도 있다. 이유가 있다. 웨일스 지역은 16세기에 잉글랜드와 완전히 병합됐기 때문이다. 따라서 1707년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가 통합될 때, 웨일스는 잉글랜드의 일부로 간주되었고 당시 이들은 독자적인 국기도 없었다. 20세기 중반까지도 웨일스는 잉글랜드의 연장선상에 불과했다. 웨일스는 1955년까지 수도가 없어, 런던이 그 역할을 대신했다. ‘레드드래곤’이 들어간 현재의 웨일스 국기도 1959년에 만들어졌다. 전통적으로 웨일스를 상징하는 레드드래곤이 유니온 잭에 포함되야 한다는 주장도 일부 있지만, 실현 가능성은 없다. 잉글랜드와 웨일스의 관계를 의붓아버지와 아들에 빗대는 이들도 있다. 웨일스는 잉글랜드의 원치 않은 아들이고, 웨일스는 의붓아버지에 대한 애정은 없으나 약간의 돈을 받는 것에 만족하며 이사하기를 거부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웨일스는 스코틀랜드와는 달리 영국에서 독립하겠다는 의지가 약하다. 강원도보다 약간 큰 면적에 320만 인구를 가진 웨일스에서 가장 인기있는 스포츠는 럭비다. 웨일스는 자신들의 정체성과 같은 럭비에서 세계 최강 팀 중 하나다. 웨일스는 1987년 시작하여 4년 주기로 개최되는 럭비 월드컵에 9번 모두 참여했고, 4강에도 3번 진출했다. 럭비에 비해 웨일스 축구는 유럽에서 변방에 가깝다. 웨일스의 월드컵 데뷔는 1958 스웨덴 월드컵에서 이루어졌다. 조별 예선을 통과해 8강에 진출한 웨일스는 이 대회의 우승팀이 될 브라질을 만나 선전했으나, 축구 황제 펠레에게 결승골을 내줘 0-1로 아쉽게 패했다. 웨일스는 1980년대에 마크 휴즈와 이안 러시라는 걸출한 스타를 앞세워 월드컵과 유로 대회 본선에 도전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이들은 1990~2000년대에도 라이언 긱스와 크레이그 벨라미를 앞세워 부활을 꿈꿨으나 메이저 대회 벽을 끝내 넘지 못했다. 2010년대 들어 가레스 베일과 아론 램지 등을 앞세운 웨일스는 메이저 본선을 다시 두드렸고, 결국 2016 유로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룬다. 당시 잉글랜드는 인구 30만의 아이슬란드에 2-1로 지며 8강 진출에 실패한 데 반해, 웨일스는 4강에 진출했다. 웨일스가 잉글랜드와의 간접 대결에서 이긴 것이다. 웨일스는 2020유로 대회에서도 16강에 올랐다. 그리고 지난 6월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를 1-0으로 꺾고 웨일스는 2022 카타르 월드컵 티켓을 거머쥐었다. 무려 64년 만에 웨일스가 두 번째 월드컵 본선 진출에 성공한 것이다. 웨일스는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 잉글랜드, 미국, 이란과 함께 B조에 속해 있다. 만약 웨일스가 축구가 아닌 럭비 월드컵에서 잉글랜드를 만났다면 분위기가 크게 달랐을 것이다. 웨일스에서 럭비는 종교이고, 잉글랜드는 퇴마의 대상인 악마이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점은 2016유로에서도 웨일스는 잉글랜드와 B조에 같이 속했다는 것이다. 당시 웨일스는 세네갈이 2002 월드컵에서 프랑스를 꺾었듯이 피지배자의 반란을 꿈꿨다. 하지만 후반 추가 시간에 골을 허용한 웨일스는 잉글랜드에 1-2로 아쉽게 졌다. 6년 만에 메이저대회에서 다시 만난 웨일스가 잉글랜드를 상대로 이번에는 반란에 성공할지 관심이 모아진다. 이화여대 국제사무학과 초빙교수 2022.11.02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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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우의 스포츠 랩소디] 잉글랜드, 너만은 이기고 싶다

1707년 연합법은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의회를 하나로 묶으며 ‘그레이트브리튼 왕국’을 탄생시켰다. 법적으로 한 나라가 된 것이다. 그렇다고 스코틀랜드의 저항 정신이 쉽게 사라질 리 만무했다. 명예혁명(Glorious Revolution, 잉글랜드 의회와 네덜란드의 오렌지 공 윌리엄이 연합하여 제임스 2세를 폐위시킨 혁명) 이후 영국에는 스코틀랜드의 왕실이었던 스튜어트 왕조의 복위를 주장한 자코바이트의 난(Jacobite rising)이 여러 차례 일어난다. 1745년 찰스 왕세자는 스코틀랜드의 하이랜드에서 대규모 봉기를 일으켜, 에든버러를 점령한 데 이어 잉글랜드의 더비까지 진격했다. 하지만 기대했던 프랑스의 지원을 받지 못해 결국 퇴각했고, 이듬해 벌어진 컬로든 전투에서 패하며 자코바이트의 난은 막을 내린다. 넷플릭스의 인기 드라마 아웃랜더(Outlander)가 이 시기를 배경으로 만들어졌다. 잉글랜드는 반란의 씨를 없애고자 스코틀랜드 지역 사회에 잔혹한 탄압을 가했다. 많은 이들이 반역죄로 처형됐고, 스코틀랜드를 상징하는 백 파이프와 격자무늬도 금지됐다. 이들의 클랜(clan, 씨족) 제도도 잦은 반란의 근거로 여겨져, 1750~1860년에 걸쳐 고원지대의 인구를 대폭 줄이는 하이랜드 클리어런스(Highland Clearances) 정책이 시행되었다. 클랜의 붕괴로 많은 구성원은 고향에서 쫓겨났다. 이들은 도시의 하층민으로 살 거나 신대륙으로 이민을 갈 수밖에 없었다. 이후 두 나라는 피를 덜 흘리는 방법으로 싸우는 법을 찾아냈다. 축구를 통한 대결이 바로 그것이었다. 두 나라는 1872년 축구 역사상 최초의 국제 경기를 벌였다. 스코틀랜드의 글래스고우에서 치열하게 부딪힌 끝에 경기는 0-0으로 끝났다. 이듬해인 1873년 런던에서 다시 한번 두 나라의 경기가 벌어져, 잉글랜드가 4-2로 승리한다. 이후 두 나라의 경기는 매년 열렸다. 악감정이 남아있던 스코틀랜드는 잉글랜드만은 꼭 이기고 싶어 했다. 언론은 이들을 ‘오래된 적(Auld Enemy, auld는 스코틀랜드 영어로 old를 의미)’으로 불렀다. 인구와 경제력에서 스코틀랜드는 잉글랜드보다 훨씬 작은 나라다. 하지만 뛰어난 축구 기술로 무장한 이들은 라이벌에 당당히 맞섰다. 그 결과 스코틀랜드는 1880년부터 5연승을 거두는 등 초반 16경기에서 10승 4무 2패를 거두며 압도적인 우위를 보였다. 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 스코틀랜드가 29승을 거둔 데 비해, 잉글랜드는 19승에 그쳤다. 2차 대전 이후 판세는 바뀐다. 특히 잉글랜드는 1966 월드컵 우승에 이어 기세를 모아 19경기 무패 행진을 벌이고 있었다. 기세등등했던 잉글랜드가 1967년 자신들의 성지 웸블리에서 스코틀랜드와 다시 만났을 때, 결과는 뻔해 보였다. 그러나 스코틀랜드가 3-2로 깜짝 승리를 거둔다. 승리에 고무된 스코틀랜드인들은 자신들이 ‘비공식 세계챔피언’이 됐다고 농담했다. 하지만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이후 벌어진 경기에서 잉글랜드는 꾸준히 우위를 보였고, 결국 연례 경기는 1989년을 마지막으로 중단되었다. 잉글랜드 입장에서 스코틀랜드는 경쟁 상대가 더는 아니었고, 새로운 라이벌로 부각한 아르헨티나·독일과의 경기가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두 나라는 잉글랜드에서 열린 유로 96에서 다시 맞붙는다. 7년 만의 대결에 열기는 후끈 달아올랐다. 1996년 6월 15일 웸블리에서 열린 경기 전 스코틀랜드의 국가 ‘Flower of Scotland’가 연주되자, 잉글랜드 팬들은 엄청난 야유를 보냈다. 후반전 앨런 시어러의 골로 잉글랜드가 앞섰고, 키퍼 데이비드 시먼은 페널티 킥을 막아냈다. 이어 당시 스코틀랜드 클럽 레인저스 소속이었던 폴 게시코인이 그림 같은 슛을 성공하며 잉글랜드가 2-0으로 승리한다. 잉글랜드는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거스 히딩크 감독이 이끄는 네덜란드를 만나 4-0으로 앞서다, 78분 패트릭 클루이베르트에게 골을 허용한다. 4-1로 끝난 이 경기에 잉글랜드 팬들은 특히 열광했다.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 네덜란드에 막혀 1994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지 못 했던 잉글랜드는 2년 만에 대승으로 빚을 갚아준 것이다. 둘째 네덜란드의 이 한 골로 인해 결국 스코틀랜드가 8강 진출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그 후 이들은 월드컵 예선과 유로 등에서 몇 차례 더 맞붙었다. 두 나라는 지금까지 총 115번의 공식 대결을 가졌다. 다른 어떤 나라도 이들보다 많이 만나지 않았다. 역대 전적은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가 각각 48승과 41승을 거뒀고, 26번 비겼다. 아울러 1937년 경기에는 14만 9415명의 관중이 모여 유럽 축구장 최다 관중 기록을 세웠다. 지난 1일 스코틀랜드는 우크라이나에 1-3으로 패하며 2022 카타르 월드컵 진출에 실패했다. 통산 8번 월드컵에 진출한 스코틀랜드는 본선에서 한 번도 조별리그를 통과한 적이 없다. 마지막으로 월드컵 무대를 밟은 것도 무려 24년 전이다. 그만큼 스코틀랜드도 2022 월드컵에 대한 열망이 가득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국가 연주 때 스코틀랜드 팬들은 그들의 국가를 따라 불렀다. 팬들은 경기 후에도 아낌없는 축하의 박수와 격려를 보내줬다. 거대한 이웃 나라와 싸우고 있는 현재의 우크라이나를 바라보며, 스코틀랜드인들은 자유를 위해 싸웠던 자신들의 옛 모습을 본 것이다. 이화여대 국제사무학과 초빙교수 2022.06.0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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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우의 스포츠 랩소디] 가깝고도 먼 나라,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2022 카타르 월드컵 B조에는 잉글랜드, 이란, 미국이 속해 있다. 남은 한 자리를 놓고 웨일스, 스코틀랜드, 우크라이나가 경쟁 중이다. FIFA(국제축구연맹) 랭킹 27위인 우크라이나와 스코틀랜드(39위)가 6월 1일 맞붙는다. 그리고 이 경기의 승자가 나흘 후 웨일스(18위)와 대결해 B조 마지막 자리의 주인공을 가린다. 객관적인 전력, 경기 일정과 장소에서 웨일스가 유리하다. 하지만 공은 둥글고 축구는 해봐야 안다. 스코틀랜드가 B조의 한 자리를 차지하면, 축구에서 최초로 국제경기를 벌인 잉글랜드-스코틀랜드전이 월드컵 본선에서 처음으로 열리게 된다. 필자는 2회에 걸쳐 이 두 나라의 라이벌 관계를 소개하고자 한다. 축구 라이벌전을 이해하려면,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가 가진 애증의 역사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기원전 55년 로마의 카이사르는 브리튼 섬을 처음 공격했고, 이후 로마제국은 여러 번 침공을 감행해 섬 남쪽 지역을 점령했다. 하지만 로마는 브리튼 섬의 원주민인 켈트족, 픽트족 등의 강한 저항에 부딪히며 섬 전체를 점령하는 데는 실패한다. 원주민들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122년 로마는 현재의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국경 부근에 5~6m의 높이에 약 120㎞ 길이의 방벽을 세운다. 이렇게 만들어진 ‘하드리아누스 방벽(Hadrian's Wall)’은 로마의 북방 경계선이었다. 로마인의 기준으로 브리튼 섬 원주민들은 야만족이었다. 따라서 이 방벽은 ‘문명과 야만의 경계’이기도 했다. 로마인들은 방벽 위쪽의 스코틀랜드 지역을 ‘칼레도니아(Caledonia)’라고 불렀다. 4세기 후반 게르만족의 대이동으로 위기에 처한 로마는 브리튼 섬에서 군대를 철수한다. 이후 독일에서 건너온 게르만 족의 일파인 앵글로색슨이 브리튼 섬의 남부를 차지하면서 7왕국을 세웠고, 이 곳을 앵글로들의 땅인 잉글랜드라고 부르게 된다. 섬 북쪽의 픽트족은 스코트족에 동화됐고, 이들은 843년 스코틀랜드 왕국을 세운다. 한편 7왕국 중 하나였던 웨식스는 알프레드 대왕의 지휘하에 바이킹의 대규모 침략을 막아낸다. 이어 대왕의 손자인 애설스탠이 927년 잉글랜드를 통일해 잉글랜드 왕국을 건설했다. 프랑스에서 건너온 노르망디의 공작 윌리엄은 잉글랜드를 정복하고 1072년 스코틀랜드를 침공한다. 잉글랜드가 스코틀랜드에 가한 첫 공격이었다. 윌리엄의 군대는 스코틀랜드의 말콤 3세를 격파했고, 그의 아들 던컨을 인질로 잡아갔다. 1286년 스코틀랜드의 알렉산더 3세가 갑작스럽게 낙마사하자, 마땅한 후계자가 없어 귀족들 사이에 왕위 계승 분쟁이 생긴다. 이러자 잉글랜드의 에드워드 1세가 개입해 허수아비 왕을 세우고 실질적으로 스코틀랜드를 지배하게 된다. 한편 잉글랜드와 프랑스는 가스코뉴 지방의 영유권을 두고 갈등을 겪는 가운데, 스코틀랜드가 프랑스와 손을 잡는다. 이에 분노한 에드워드 1세는 1296년 스코틀랜드를 점령했고, 왕권의 상징이었던 ‘운명의 돌(Stone of Scone)’도 빼앗아간다. 에드워드 1세는 스코틀랜드를 잔혹하게 통치했다. 그 결과 잉글랜드에 대한 반감이 폭발했고 독립전쟁이 벌어진다. 당시 독립을 이끈 두 인물이 할리우드 영화 ‘브레이브하트(Braveheart)’의 주인공으로 국내에도 널리 알려진 윌리엄 월레스와 넷플릭스 영화 ‘아웃로 킹(Outlaw King)’의 로버트 1세였다. 수차례 전투 끝에 로버트 1세는 결국 승리하여 1328년 스코틀랜드에 독립을 안겼다. “짐은 국가와 결혼했다”는 말로 유명한 잉글랜드의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은 후계자 없이 1603년 임종했다. 이러자 여왕과 가장 가까운 친척인 스코틀랜드의 왕 제임스 6세가 왕위를 물려받게 된다. 두 나라는 여전히 안 좋은 감정이 남아 있었지만, 같은 군주를 모시게 된 것이다. 이렇게 동일 군주 아래 2개 이상의 국가가 결합하는 것을 ‘동군연합(Personal union)’이라고 부른다. ‘대항해시대(Age of Discovery)’를 맞아 유럽 국가들이 식민지 개척으로 국부를 쌓게 되자, 스코틀랜드도 이에 동참한다. 17세기 후반 이들은 북미와 남미를 잊는 좁은 길목인 다리엔(Darién)에 주목했다. 교통의 요충지인 이곳에 ‘뉴칼레도니아’를 설립하여 대서양과 태평양을 잇는 무역 거점을 만들고, 부와 영향력을 얻고자 했다. 스코틀랜드는 모든 경제력을 동원해 다리엔에 올인했다. 하지만 그곳은 인간이 살 수 없는 극한의 오지였다. 농사도 지을 수 없었고 풍토병도 만연했다. 설상가상으로 당시 중남미의 맹주였던 스페인은 그곳을 자신의 영토라 여겨, 스코틀랜드 원정대를 공격했다. 결국 국운을 건 다리엔 1, 2차 원정대는 처참하게 실패한다. 이 와중에 1690년대 스코틀랜드는 흉작, 기근으로 인해 인구의 15%가 사망하는 ‘불운한 7년(Seven ill years)’까지 겪게 된다. 나라 전체가 위기에 빠진 것이다. 이러자 잉글랜드가 합병안을 들고나온다. 합병안은 잉글랜드가 스코틀랜드의 빚을 갚아주는 대신 연합왕국을 만들자는 것이었다. 이를 반대하는 사람들도 많았으나 스코틀랜드가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다른 선택이 없었다. 오랫동안 미워하고 싸웠던 두 나라는 결국 1707년 합병해 ‘그레이트브리튼 왕국(Kingdom of Great Britain)’으로 하나가 되었다. 이후 1801년 아일랜드까지 합쳐져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왕국(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Ireland)’이 탄생한다. 이화여대 국제사무학과 초빙교수 2022.06.01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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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우의 스포츠 랩소디] 국가(國歌)가 여러 개인 잉글랜드 대표팀

영국(UK)은 4개의 지역, 즉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와 북아일랜드로 구성된다. 이 네 지역을 홈 네이션스(Home Nations)라고 부르기도 한다. 홈 네이션스는 단일 팀인 ‘Team GB’로 올림픽에 참가한다. 하지만 4년마다 개최되는 영국 연방 국가 간의 종합 스포츠 대회인 코먼웰스 게임(Commonwealth Games)에는 이 네 지역이 각각의 대표팀을 꾸려 참가한다. 홈 네이션스는 그들만의 축구 대표팀과 국가(國歌)도 가지고 있다. 영국 국가는 국내에도 널리 알려진 ‘God Save the Queen(GSQ, 신이여 여왕을 지켜 주소서)’이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올해 2월 즉위 70주년을 맞았다. 고령인 여왕(1926년생)이 왕위를 찰스 왕세자나 윌리엄 왕세손에게 물려줄 경우 국가는 ‘God Save the King’으로 바뀐다. 대영제국의 확장을 통해 ‘God Save the King/Queen’은 전 세계로 수출되었고, 각 식민지의 국가 역할을 했다. 식민지들의 독립과 함께 이 곡의 사용 빈도는 줄어들었다. 하지만 GSQ는 아직도 뉴질랜드의 공식 국가 2개 중 하나이고, 캐나다와 호주 등을 포함한 14개 영연방 왕국(Commonwealth realm)의 왕실가로 사용되고 있다. GSQ는 ‘사실상의(de facto)’ 영국 국가이지만, 법적으로 공인된 건 아니다. 영국에는 비공식 국가가 하나 더 있다. ‘Rule, Britannia!(지배하라 브리타니아!)’가 바로 그것이다. 브리타니아는 고대 로마인이 사용했던 브리튼(Britain) 섬의 호칭이자, 이 섬을 상징하는 여성 전사이기도 하다. Rule Britannia는 18세기 중반에 등장해 많은 인기를 얻었지만, 사실 일반인이 부르기 힘든 곡이다. 이에 성악가의 독창을 위시로 관중들은 유명한 후렴구 "Rule Britannia, Britannia rule the waves. Britons never, never, never shall be slaves. 지배하라 브리타니아. 파도를 지배하라. 영국인은 절대, 절대, 절대 노예가 될 수 없다"를 합창하는 식으로 노래를 따라 부른다. “파도를 지배하라”는 후렴구에서 보이듯이 특히 이 곡은 해상을 지배했던 대영제국의 해군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 노래는 군국주의적인 가사 때문에 좌파 지식인들에게는 인기가 없으나, 일반 영국인들에게는 폭넓은 사랑을 받고 있다. 아스널 FC는 1971년 FA컵 결승전에 진출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Rule Britannia의 멜로디에 새 가사를 붙여 ‘Good Old Arsenal’를 만들었다. 아스널은 결승전에서 리버풀을 2-1로 물리치며 우승했고, 이 응원가는 지금까지도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잉글랜드도 공식 국가가 없다. 따라서 그들은 국제 스포츠경기가 열릴 때 영국 국가인 GSQ를 주로 사용한다. 대표적으로 축구와 럭비 유니언에 GSQ가 연주된다. 흥미로운 점은 잉글랜드는 종목에 따라 다른 국가를 쓸 때도 있다는 것이다. 에드워드 엘가가 작곡한 ‘위풍당당 행진곡(Pomp and Circumstance)’의 ‘Land of Hope and Glory(LHG, 희망과 영광의 나라)’도 잉글랜드의 국가로 널리 쓰인다. 국내에도 많이 알려진 이 곡은 2005년까지 잉글랜드 럭비 리그 대표팀과 다트 팀의 국가로 쓰였다. 정치적으로는 영국의 보수당과 연관이 깊고, 가사에 제국주의적 요소가 담겨 있어 좌파 지식인들의 비판을 받는 노래이기도 하다. 미국에서 LHG는 졸업식 노래로 널리 알려져 있다. 지난 10일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때도 이 곡은 여러 번 연주됐다. 잉글랜드 크리켓 대표팀이 사용하는 국가는 ‘Jerusalem(예루살렘)’이다. 이스라엘의 수도 예루살렘이 잉글랜드 국가라는 사실에 의문을 가진 독자들도 있을 것 같다. 영국의 시인이자 화가인 윌리엄 블레이크는 1804년 ‘And did those feet in ancient time(고대에 그 발을 행하였나이다)’로 시작하는 시를 작성했다. 어린 예수가 아리마데의 요셉과 옛 잉글랜드 땅을 방문했다는 전설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다. 이 시는 예수의 방문이 잉글랜드에 천국을 만들었는지를 묻고 있고, 이상적인 사회를 건설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오랫동안 영국 성공회(Church of England)는 예루살렘을 천국에 비유해 왔다. 1916년 휴버트 페리 경이 이 시에 곡을 붙여 찬송가 ‘예루살렘’이 만들어졌다. 엘리자베스 2세의 할아버지였던 조지 5세는 God Save the King을 대신해 예루살렘을 영국 국가로 선호했다고 한다. 이 곡은 다른 나라에 대한 우월성 선언이나 정복 등의 내용이 없고, 영국을 개선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정치적으로는 노동당 지지자들과 진보 인사들 사이에서 더 많은 인기를 얻고 있기도 하다. 2006 코먼웰스 게임까지 잉글랜드의 국가는 LHG였다. 하지만 2010 대회를 앞두고 실시한 여론 조사에서 예루살렘은 52%의 지지를 받아 새 국가로 선정됐다. 당시 LHG는 32%의 지지를 얻었고, GSQ는 겨우 12%를 얻는 데 그쳤다. GSQ는 잉글랜드를 비롯해 영국에서도 인기를 잃어 가고 있다. 이 곡은 국가가 지향할 바를 보여주기보다 군주에 대한 충성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에 비민주적이고, 구시대적이기 때문이다. 또한 곡 자체도 지루하고 영감이 없다는 주장도 있다. 따라서 다른 홈 네이션스처럼 잉글랜드도 독자적인 국가를 가져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이화여대 국제사무학과 초빙교수 2022.05.18 06:00
경제

미국은 스코틀랜드 독립을 반대한다

스코틀랜드의 분리독립 주민 투표가 사흘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독립을 반대하는 국가들의 설득과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미 백악관은 15일(현지시간) '통일된' 상태의 영국과 '특별한 관계'를 계속 유지하길 원한다면서 스코틀랜드 분리독립에 대한 반대 입장을 우회해 표현했다고 뉴스1이 보도했다. 조시 어니스트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백악관이 자신의 미래에 대한 스코틀랜드의 18일 결정을 존중할 것이지만 영국이 '강하고 단단하며 통합된' 파트너이기를 원한다"고 밝혔다.또한 이날 독립 반대에 투표하길 독려하러 스코틀랜드를 방문중인 데이비드 캐머론 영국 총리는 스코틀랜드의 분리독립이 결정된다면 이는 '실험적인 별거'가 아닌 '고통스런 이혼'이 될 것이라며 독립 반대를 설득했다. 영국에서는 수천명이 트라팔가 광장에 모여 영국 국기인 유니언잭기를 흔들며 "함께 있자", "스코틀랜드, 우린 널 사랑해, 가지마" 등이 써진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 유니언잭은 연합왕국을 형성하는 잉글랜드·스코틀랜드·아일랜드의 3국의 기를 조합하여 만든 것이다 반면 스코틀랜드 국민당 대표 겸 스코틀랜드 자치정부 총리인 알렉스 샐먼드는 자치 정부의 통치가 스코틀랜드에 더 이득이며 스코틀랜드가 번영할 수 있는 자원을 갖고 있다면서 경제발전을 위해서도 독립을 찬성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한편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은 14일 스코틀랜드 독립투표에서 유권자들이 신중한 선택을 할 것을 촉구한 바 있다.온라인 일간스포츠 2014.09.16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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